‘사는 게 너무 복잡해서’ 시작한 도시 속 간소한 삶
- 매일이 ‘해야 할 일’로 꽉 찼던 시간들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멈췄다
알람은 쉴 새 없이 울리고 단톡방엔 대답하지 못한 메시지가 쌓였다
‘오늘 뭐 먹을까’부터 ‘주말에 누구를 만나야 하지’
‘신상 할인 언제까지더라’ 같은 사소하지만 머리를 채우는 정보들로
내 하루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일 인간관계 소비 SNS 시간관리 건강관리까지
나는 무언가를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을 돌볼 틈을 잃고 있었다
지쳐서 쓰러질 듯 퇴근해도
배달 앱을 켜는 손은 멈추지 않았고
늘어가는 택배 상자 앞에서 ‘내가 뭘 원했던 걸까’ 되묻기 시작했다
살아가는 게 너무 복잡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비워야 할 건 많은데 마음은 늘 가득 차 있었다
그 복잡함을 견디는 게 성인이 된다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문득 깨달았다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간소한 삶’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차원이 아닌
복잡함에서 조금씩 나를 빼내는 일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첫 시작이었다
- 물건 약속 소음에서 한 발 물러서 보기로 했다
처음 시도한 건 ‘물건 줄이기’였다
하지만 금방 알게 됐다
문제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너무 많은 걸 쥐고 사는 방식에 있었다
옷장을 열어도 입을 게 없고
책장은 가득한데 읽지 않은 책이 태반이며
정리하려 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단순히 비우는 게 아니라
“이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건 정리와 함께 시작한 두 번째 시도는 ‘약속 줄이기’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잡았던 약속
가볍게 응했던 모임
의무감으로 이어가던 인간관계를
한 발짝 물러서 보기로 했다
불안했다
‘거절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점점 혼자 남는 건 아닐까?’
하지만 막상 줄이고 나니
진짜 나를 찾는 사람만 곁에 남았고
의무가 아닌 진심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만이 내 일상을 채웠다
도시의 소음도 줄여보기로 했다
퇴근길에 이어폰을 빼고 걸었고
주말엔 TV와 SNS를 껐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아무것도 듣지 않는 순간을
처음엔 어색하게 나중엔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 덜 복잡하게 살기로 한 후에 찾아온 것들
간소한 삶을 선택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내 삶의 리듬이었다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고 커피를 내렸다
이전 같았으면 침대에서 핸드폰부터 확인했겠지만
지금은 햇살의 온도와 바람의 냄새를 먼저 느낀다
출근 준비도 서두르지 않고
딱 필요한 옷과 필요한 물건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드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퇴근 후엔 종이책을 펼치고
밤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며 글을 쓴다
어떤 날엔 그냥 멍하니 있는 시간도 만든다
예전엔 그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런 시간이 오히려
내 마음을 정돈해주는 소중한 쉼이 되었다
또 하나 달라진 건 돈에 대한 감각이다
사고 싶은 게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소비도 줄었고
소비가 줄자 오히려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나는 이제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아도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도시 속 간소한 삶은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다
사람들은 종종 간소한 삶을 이야기하면
도망이나 포기라고 생각하곤 한다
‘버티기 힘드니까 줄인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어쩌면 그 말이 맞다
나는 버티기 힘들었고
그래서 내 삶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회피가 아니다
복잡한 걸 참고 사는 대신
나에게 맞는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도시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정보는 넘치고 유행은 빠르고 사람들은 바쁘다
그 한복판에서 나만 느리게 살아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내 삶의 기준은 남이 아니라 나다
내가 얼마나 덜 피곤한가
내가 얼마나 더 만족스러운가
그게 나에게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 되었다
간소한 삶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이 아니라
불필요한 복잡함을 줄이고 나에게 꼭 맞는 질서를 세우는 삶이다
이 삶이 완벽하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삶이
조금 더 나다운 삶에 가까워졌다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사는 게 너무 복잡하다고 느껴질 때
그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구조가 당신에게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걸 다 잘 해내지 않아도 된다
모든 걸 갖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복잡함에서 한 발 물러서는 건
어쩌면 당신이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그 복잡함에서 한 가지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나처럼 당신도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