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은 방이 아니라 나만의 우주였다
서울에 있는 5평짜리 오피스텔
이사 올 땐 그저 임시 거처라고 생각했다
직장이 가깝고 월세가 비교적 저렴해서 선택한 공간이었다
좁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짐을 옮기고 보니
침대 하나 책상 하나만 두어도 꽉 차는 크기였다
처음 며칠은 답답함이 컸다
벽과 침대 사이를 옆으로 겨우 지나고
주방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싱크대
냉장고 위에 전자레인지
그리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겹쳐 있는 구조
그런데 이상하게도
며칠이 지나자 이 작은 공간이 점점 나에게 맞춰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복잡한 도심을 누빈 뒤
5평짜리 방 안에 들어오면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불필요한 장식이 없으니 눈도 마음도 편했고
움직임이 최소화된 덕에 에너지를 덜 썼다
방은 작지만 그 속에서 나는 더 나다워졌다
가구를 최소화하고 물건을 줄이고
공간보다 나의 리듬에 집중하면서
이 작은 방은 어느새 ‘내가 존재하는 우주’가 되었다
- 무조건 줄여야 했다 덕분에 더 명확해졌다
5평 공간에서 살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정리’였다
수납공간이 거의 없다 보니
무언가를 들이기 위해선 반드시 무언가를 비워야 했다
옷도 책도 식기도 심지어 감정까지
모든 게 ‘진짜 필요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걸러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질문을 통해 남은 것들은
나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들이었다
계절마다 입던 옷 대신
내가 좋아하는 색감과 질감의 옷 몇 벌만 남았고
사놓고 읽지 않던 책들은 처분하고
내가 자주 읽는 책 몇 권만 책장에 올렸다
이런 정리는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었다
지금 이 공간에 존재하는 물건들은
전부 나의 선택을 반영한다
누군가 대신 골라준 것도 남들 따라 산 것도 없다
오직 내가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느낀 것들만이
이 작은 공간 안에 살아 숨 쉰다
5평 공간은 나를 제약했지만
그 제약 덕분에 오히려
삶의 우선순위가 또렷해졌다
- 불편함을 감내하는 대신 익숙해지는 법을 배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편한 점도 많다
세탁기 돌릴 공간이 없어서 공용세탁실을 써야 하고
음식 냄새가 금세 집안 가득 퍼지며
친구를 초대할 여유도 거의 없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제약을 참을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5평 공간에서 살며
불편함을 없애기보다 불편함과 친해지는 법을 배웠다
예를 들어 요리는 한 번에 여러 끼를 해두고
옷은 돌려 입되 자주 세탁해서 깔끔하게 유지한다
책상 하나를 식탁과 작업대로 겸용하고
청소는 매일 5분씩 루틴으로 돌린다
이런 변화는 작은 공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마음의 공간도 함께 정리되기 시작했다
복잡한 인간관계보단 편안한 소수와의 연결
모임보다 산책 쇼핑보다 독서
시간을 소비하는 대신 시간을 누리는 법
결국 나는
불편함 속에서 편안함을 찾아내는 능력을 키웠고
그건 서울 같은 빠른 도시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 공간이 작을수록 삶은 더 크게 느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간이 작아질수록 삶은 더 넓어졌다
물리적으로는 확실히 좁아졌지만
정서적으로는 훨씬 여유가 생겼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쓸 수 있었고
외부 자극에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
주말이면 근처 도서관이나 공원으로 나갔고
가끔은 집 근처 단골 카페에서 글을 쓰기도 했다
내 공간이 작으니 바깥 세상을 더 적극적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작은 공간에서
‘부러움’이라는 감정도 점점 줄어들었다
누군가는 넓은 집에서 고급 소파에 앉아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내 좁은 방에서 햇살 한 줌에 감동했다
좁은 창으로 비치는 노을빛이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고
깔끔하게 정리된 방바닥을 맨발로 걸을 때
나는 그 누구보다 평화로웠다
물리적 넓이보다 중요한 건
삶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넓이임을 깨달았다
나는
작지만 충분한 삶
서울의 5평 방에서 살면서
나는 줄이고, 비우고, 적응하고, 결국은 만족하게 되었다.
처음엔 생존을 위한 타협이었다면,
이제는 의식적인 선택이 되었다.
더 갖지 않아도 괜찮고,
덜 채워도 충분하며,
작은 공간에서도
삶은 여전히 풍요롭게 피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넓은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원했던 것 아닐까?
지금 당신이 있는 그 공간도
충분히 당신을 품을 수 있다.
조금 더 들여다보고, 조금만 덜어낸다면
거기에도, 나처럼
충분한 삶의 온기가 깃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