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살수록 깊어지는 인간관계 거리두기의 미학

작게 살수록 깊어지는 인간관계 –거리두기의 미학

너무 많은 연결 속에서 오히려 외로웠다
도시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퇴근길 지하철 안 빽빽한 단톡방 하루 수십 개의 알림과 메시지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진짜 관계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예전의 나는 사람이 많을수록 외롭지 않을 거라 믿었다
술자리를 빠짐없이 챙기고 단톡방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내가 존재감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은 공허했고
관계가 많을수록 피곤함도 함께 커졌다

사람과 자주 마주친다고 해서
그게 곧 깊은 관계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대화는 가볍고 진심은 숨겨졌으며
소통은 있지만 온기는 사라졌다

그럴수록 질문은 뚜렷해졌다
나는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정말 나를 알고 있는가?

거리를 두니 진짜가 보였다
작게 살자고 결심한 건 인간관계를 정리하면서부터였다
소위 말하는 인맥 관리를 중단하고
약속을 줄이고 단톡방을 나왔다
SNS는 접속하지 않았고 연락이 끊긴 사람에게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둘 멀어진 사람들 중
조용히 사라지는 관계도 있었고
요즘 어떻게 지내? 라며 진심으로 다가오는 관계도 있었다

거리를 두자 놀랍게도
진짜 관계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억지로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굳이 자주 보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가 궁금한 사람
침묵도 불편하지 않은 사이

이들은 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 어떤 폭넓은 인간관계보다 깊고 단단했다

예전엔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그 안엔 피로도 형식적인 대화 의무감이 많았다
지금은 한 달에 두세 번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그 만남에 담기는 에너지와 마음의 깊이는 훨씬 커졌다

적게 만나니까 상대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대화의 표면이 아니라, 그 밑의 감정을 보게 되고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느끼려 한다

많이 아는 것보다 깊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적은 수의 관계에 집중하니
내 마음도 덜 지치고
한 사람에게 마음을 충분히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결국 상대에게도 더 깊은 신뢰와 진심으로 돌아왔다

거리두기는 단절이 아니라 선택의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거리를 두면
고립된다고 생각한다
외로워지고 사회성이 떨어질 것 같고 불안해진다고

하지만 내가 경험한 거리두기의 진짜 의미는 단절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관계를 줄인다는 건
내가 어떤 사람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고 싶은지
주체적으로 고르는 것이다

그동안은 습관처럼 이어왔던 관계였고
내 감정과는 무관하게 유지했던 만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진심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사람만 남겨도
삶은 결코 외롭지 않다

거리는 때때로
감정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 가까워도 마음이 멀면 상처만 남고
거리가 멀어도 마음이 가깝다면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

그러니 작게 살기로 한 삶에서
거리두기는 나를 보호하고 동시에 관계를 더 깊게 만드는 기술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복잡한 도시에서
더 많은 사람 더 넓은 인맥 더 많은 약속을 쌓는 것이
관계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간들

하지만 작게 살기 시작하며 깨달았다
사람 수보다 중요한 건 관계의 깊이라는 것
많지 않아도 괜찮고 자주 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다울 수 있고 서로 진심을 나눌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소중한 관계다

작게 살수록 나는 더 잘 듣게 되었고
더 정확하게 사랑하게 되었고
더 깊이 연결되게 되었다

작은 삶은 결코 좁은 삶이 아니다
그 안에 더 단단한 연결이 자라고 있었음을
나는 이제 안다

시리의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