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달엔 아무것도 사지 않기로 했다
무작정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
식비 월세 교통비처럼 살기 위한 최소한의 지출은 허용하되
그 외의 모든 소비는 멈추는 실험이었다
카페 온라인 쇼핑 배달 편의점 충동구매 모두 금지
처음엔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정말 소비 없이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내 안엔 묘한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어딜 가도 사라는 메시지
어딜 봐도 갖고 싶다는 자극
언제부턴가 지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한 달간의 실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카드 결제 알림이 울리지 않도록
온라인 장바구니를 닫고
핸드폰 화면 시간을 줄이면서
- 불편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첫 일주일은 꽤 고통스러웠다
출근길 카페를 지나치며 생긴 공허함
퇴근 후 쇼핑앱을 무심코 열었다가 아차하고 닫는 순간들
소비는 내 루틴의 일부였고 감정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배달이 안 되니 요리를 해야 했고
옷이 질리면 새로운 조합을 고민해야 했고
무료한 밤엔 스마트폰 대신 책이나 산책으로 시간을 채워야 했다
편리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자
몸도 마음도 당황해했다
이렇게까지 소비에 기대고 있었구나
소비를 끊어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지출해왔는지
또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위로에 돈을 쓰고 있었는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 조금씩, 진짜 필요가 보이기 시작했다
2주쯤 지나자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의 불편함이 조금씩 익숙함으로 바뀌고,
그 틈 사이로 ‘진짜 필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옷이 모자란 게 아니라 코디에 신경을 안 썼던 거였고
지루했던 게 아니라 혼자 있는 법을 몰랐던 거였다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를 조합해
처음 해보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재미
카페 대신 공원 벤치에 앉아
노을을 보는 여유
책을 천천히 읽고 생각을 오래 붙들고
산책하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저녁
그 모든 건 돈이 들지 않았다
소비가 줄자 오히려 삶의 감각이 또렷해졌다
나는 어느새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덜 소유하고 더 자유로워졌다
한 달이 끝날 무렵 나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카드 명세서는 놀랄 만큼 줄었고
옷장 정리나 책장 정리에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됐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소비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선택의 주인이 되는 경험이었다
욕망을 잠시 멈추고 나니
내가 원한 게 사실 물건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관심을 원했고 위로를 원했고 의미를 원했다
그걸 소비로 해결하려 했을 뿐
소비 없는 한 달은 불편했지만
그 속엔 자유로움의 씨앗이 있었다
더 많이 살수록 자유로워질 거라 믿었던 내게
오히려 덜 가질수록 덜 흔들리는 삶을 보여줬다
소소한 즐거움은
소비를 멈춘 한 달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에 끌려다니고 있었는지를 알려줬고
동시에 내가 얼마나 적은 것으로도 괜찮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증명해줬다
불편했지만 덕분에 자유로웠다
불편했기에 자유로움의 본질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유는 단순히 안 사는 삶이 아니라
나를 중심에 두는 삶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