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낼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 복잡한 도시 단순한 마음을 향한 실험
서울의 삶은 늘 복잡하다
출근길 지하철 안의 인파
끊임없는 알림과 광고
매일 쌓이는 물건과 관계 정보
이 도시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조차 일종의 노력이 된다
나 역시 그런 도시의 속도에 지쳐 있었다
더 좋은 것을 갖고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흐려져 있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하나씩 덜어보는 실험을
먼저 책장을 비웠다
오래전에 산 채 읽지 않은 책들
언젠가 읽겠지 싶은 자기계발서
다 버렸다
그리고 알게 됐다
진짜 필요한 건 늘 눈앞에 있었는데
쓸모없는 정보들이 그걸 가리고 있었다는 것
물건만이 아니었다
약속도 줄이고 알림도 줄이고
소셜미디어도 한동안 꺼뒀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의 일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 물건이 줄어들자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는 너무 바쁘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본다고 착각하면서
사실은 대부분 스쳐 간다
집 안의 물건도 마찬가지였다
수납장 안의 장식품
1년 동안 쓰지 않은 전자기기
그냥 거기 있는 것들이었지만
그것들 하나하나가 시선과 에너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공간을 정리하고 비우자
그 자리에 풍경이 생겼다
햇살이 들어오는 벽
바닥에 떨어지는 그림자
작은 식물이 자라는 속도
물건은 줄었지만
마음은 더 풍성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버림의 끝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보기 시작했다
이건 도시에서 살기에 더없이 이상적인 감각이었다
도시의 소음과 정보 속에서
내가 나로 남기 위해서는
비움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선택이었다
- 관계도 감정도 가볍게 비우는 법
도시에서의 인간관계는 참 묘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만큼 깊게 나눌 수 있는 관계는 드물다
나는 한때 관계를 유지하는 데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썼다
답장을 늦게 보내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모임에 빠지면 소외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억지로 웃고
가고 싶지 않은 자리에도 나갔다
그러면서 정작 내 감정은 소외되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이 내게 준 두 번째 변화는
감정에도 선을 긋는 법이었다
가볍게 피로한 관계를 멀리하고
진짜 나다운 대화에만 시간을 썼다
그 과정에서 상처도 있었고
외로움도 잠깐은 밀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관계도, 감정도 더 진실해졌다
불필요한 정서적 소음을 줄이는 건
도시에서 내 마음을 지키는 최소한의 기술이었다
- 결국 보이기 시작한 건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였다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기대 미련 가능성 같은 것들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입을 옷
누군가에게 받은 마음의 빚
언젠가 쓸지도 모를 아이템들
하지만 그걸 내려놓고 나면
신기하게도 공백이 생긴다
그리고 그 공백은 묻는다
이제 여기에 무엇을 채울래?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어떤 삶을 원했는지 어떤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또렷해진다
내게 필요한 건
많은 옷이 아니라 편안한 옷이었고
많은 친구가 아니라 진짜 마음이 닿는 사람이었다
넓은 집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여백이었다
미니멀리즘은
덜 가짐의 기술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원하는 것을 알아보는 감각이다
버리고 비우는 끝에서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의 윤곽을 마주하게 됐다
우리는 어쩌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며
너무 많은 것에 반응하고
너무 많은 것을 쌓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속에서 진짜 삶은 덜어냄으로써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버리면 허전할 줄 알았지만
그 빈자리에야 진짜 내가 채워졌다
그래서 도시 속 미니멀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무언가를 더 잘 발견하는 삶이다
조금씩 버려갈수록
나는 점점 더 많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