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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은 이해가 아니라 머뭇거림에서 시작된다

by 시리의 생활 2025. 7. 8.

어떤 작품 앞에서는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먼저 멈칫하게 된다 눈앞에 놓인 그림이나 조각 혹은 사진은 당장 해석되지 않고 오히려 묘한 정적 속에 나를 붙잡아 둔다 우리는 종종 예술작품을 볼 때 의미를 파악하거나 메시지를 해독하려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진짜 좋은 작품은 그 모든 생각 이전에 나를 한 발짝 멈추게 만든다

그림의 색이 이상하게 어두운 것 같고 형태는 낯설고 제목도 전혀 힌트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 앞에 서게 된다 해석은 뒤로 미루고 감정만이 먼저 반응한다 머뭇거리는 그 짧은 순간이야말로 진짜 감상의 시작이 된다

머뭇거림은 감정의 이름을 찾기 전의 상태다 마치 감정이 아직 태어나기 전처럼 아직 언어로 붙잡히지 않는 감각이 마음속에서 부유한다 그런 상태로 서 있는 동안 우리는 작품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게 된다 설명은 없지만 경험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좋은 작품은 이해가 아니라 머뭇거림에서 시작된다
좋은 작품은 이해가 아니라 머뭇거림에서 시작된다

 

1. 해석 이전의 침묵을 견디는 용기

많은 사람들이 예술작품 앞에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해석 이전의 침묵을 견디는 용기 말로 한 발 물러서곤 한다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으니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어쩌면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감각 그 자체이다 작품을 보는 순간에 오는 침묵이나 정지된 시선은 무언가 감각이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좋은 작품은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여운을 남기며 안쪽 어딘가를 흔든다 그 흔들림은 명확하지 않아서 불안하고 애매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불확실함을 피해 익숙한 해석을 찾아간다 그러나 해석으로 너무 빨리 건너가면 그 흔들림이 품고 있던 진짜 감각을 놓치게 된다

예술을 제대로 만나는 순간은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논리보다 훨씬 오래가는 감정이 되고 기억 속에 남는 어떤 이미지가 된다 설명되지 않은 장면이 오히려 더 깊게 각인되는 것처럼 어떤 작품은 이해가 아니라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 침묵을 견디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동시에 그 무엇보다 진실하다 작품과 나 사이에 아무 말도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안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

 

2. 작품 앞의 머뭇거림은 나를 드러낸다


작품 앞에서 멈추는 그 순간 우리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 앞의 머뭇거림은 나를 드러낸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는지 그 이유를 아직 모르지만 반응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좋은 작품은 내 안의 감정을 불러낸다 그러나 그 감정은 자주 명확하지 않다

그림을 보고 나서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지거나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은 경우가 있다 그때 우리는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어서 당황하거나 피하려 한다 그러나 그 어색한 감정이야말로 작품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순간이다

작품 앞에서 머뭇거리는 순간은 나의 감정과 경험이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같은 작품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데 나는 왠지 불편하거나 묘하게 감동을 받는다 그 차이는 단지 취향이 아니라 내 안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거울이다

그래서 예술은 이해받기보다는 경험되어야 한다 머뭇거림은 그 경험의 입구다 작품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내 안의 낯선 감각일 수도 있다 예술은 타인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3. 설명하지 않아도 남는 감각의 흔적


좋은 작품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자꾸만 떠오른다 설명하지 않아도 남는 감각의 흔적

한 번 본 장면이 계속 마음속에 머무르고 때로는 꿈에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이해된 지식이 아니라 감각의 잔재다 설명하지 못했지만 사라지지 않는 인상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어떤 전시회에서 오래도록 머물게 했던 작품이 있었다 나는 끝내 그 그림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그 작품의 색과 빛 그리고 공간감은 한동안 내 일상에 그림자를 남겼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그 그림을 떠올리고 조용한 음악을 들을 때 그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그렇게 설명되지 않는 감각은 오래 간다 좋은 작품은 머리보다 몸에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의 감각이 천천히 말을 얻고 설명되지 않았던 것이 나만의 해석으로 바뀌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작은 항상 멈칫하는 그 한 걸음에 있다

예술은 결코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다 머뭇거림과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 마음은 더 깊이 열린다 설명은 사라져도 감각은 남는다 그래서 좋은 작품은 이해가 아니라 머뭇거림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