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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도 쇼핑도 약속도 줄이고 나서 얻은 것들

by 시리의 생활 2025. 6. 10.
  1. 일상 속 '빈틈'이 주는 평화
    도시에서 살다 보면 쉼 없이 이어지는 일정과 약속 끝도 없이 올라오는 알림 속에서 '빈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기 어렵다. 예전의 나는 그런 일상에 익숙했다 주말이면 카페에서 약속을 잡고 틈틈이 쇼핑몰 앱을 열어 보고 “다음에 언제 볼까?”라는 말이 인사처럼 오가는 관계들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날 ‘지치는 나’를 보고 억지로 줄이기 시작했다 약속을 줄이고 쇼핑을 멈추고 카페를 혼자 가는 일도 덜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텅 빈 주말 조용한 저녁 알림 없는 스마트폰 화면 마치 ‘소외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빈틈은 차츰 내게 평화를 주기 시작했다

조용한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면서 나는 걷기 시작했고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 귀 기울이다 보니 소소한 것들에 감각이 열렸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일 아침 해가 방 안에 스며드는 걸 보는 일 아무 목적 없이 펜을 들고 일기를 쓰는 일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안하지 않게 되자 그 빈틈이 오히려 나를 회복시켰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꼭 의미 있는 건 아니었고 많은 활동이 반드시 내게 에너지를 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1. 소비 대신 선택 무언가 사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유
    카페를 줄이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약속 혼자 있는 시간 심지어 일할 때조차 카페가 기본 배경이 되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좋아서 간다기보단 뭔가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사기 위해 가고 있구나

쇼핑도 마찬가지였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무언가를 사고 싶었다

바빠서 감정 정리를 못할 때도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피곤한 날도 결제를 하면 조금은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택배가 도착하고 나면 그 만족감은 금세 휘발되었고 다음 ‘무언가’를 찾는 일은 반복되었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비를 줄여봤다 처음엔 불편했다 "이번 달엔 아무것도 사지 말자"는 다짐을 했을 때 손은 자꾸 온라인몰을 열었고, 마음속엔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조금만 지나니 점점 ‘선택’의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물건이 정말 필요한가? 지금 카페에 가는 게 나를 회복시켜 줄까? 단순한 ‘구매’가 아닌 나에게 꼭 맞는 삶의 방식과 연결된 소비만을 선택하게 되자 훨씬 깔끔하고 여유 있는 마음이 찾아왔다

소비를 줄였더니 내가 가진 것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옷장 속 옷도 집에 있는 책도 커피 머신도 비워내기 전엔 몰랐다 ‘더’가 아니라 ‘충분함’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는 걸

  1. 인맥보다 관계 깊이의 감각이 살아났다
    약속을 줄이겠다고 처음 선언했을 때 주변 반응은 다양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혼자 있고 싶으면 말해도 돼 요즘 너 너무 조용해 사람들은 내가 우울하거나 힘든 상태라고 오해했다. 하지만 실은,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는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예전의 나는 누구에게나 예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연락이 오면 반사적으로 수락하고 바빠도 시간을 쪼개 만나고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무리해서 분위기를 맞췄다 그런데 그런 관계들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고 진짜 나를 만날 여유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약속을 줄이는 실험'은 생각보다 큰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만나야 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약속은 뒤로 미뤘고 마음 깊이 보고 싶은 사람들과의 만남에 더 집중했다 덕분에 횟수는 줄었지만 한 번의 만남이 훨씬 더 깊고 진실하게 다가왔다

또 하나 '약속 없는 날'을 경험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도 내려놓게 됐다 혼자 있는 시간이 곧 외로움은 아니라는 것을 타인과의 연결만큼이나 나 자신과의 연결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란한 만남보다 나를 편하게 하는 관계 하나가 훨씬 더 오래가는 법이라는 것도

  1. 가벼워진 삶에서 만난 나 그리고 진짜 즐거움
    카페 쇼핑 약속 이 세 가지는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줄인다고 했을 때 나는 ‘심심한 인생’을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오히려 삶이 풍부해졌다

바깥에서 채우지 않으니 안에서 찾게 되었다 스스로 만든 음식에 집중하고 조용한 음악을 틀고 책을 읽으며 혼자 걷는 골목길에서 계절을 느끼게 되었다 일상이 이렇게 괜찮은 거였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내가 놓치고 있었던 작은 즐거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나 자신을 돌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외부에서 위안을 구했다면 지금은 내부에서 균형을 맞추려 한다 잠을 잘 자고 일찍 일어나고 잘 씻고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명상을 한다 별 것 아닌 행동 같지만 이것들이 쌓이면 '나'라는 사람이 훨씬 단단해진다

나는 지금도 때로는 카페에 가고 가끔은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더 이상 그게 나의 기분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약속도 소비도 공간도 모두 내 삶을 채워주는 ‘수단’일 뿐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기준은 아니다

가벼워진 삶 속에서 나는 나와 더 가까워졌고 그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이야말로 진짜 즐거움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덜 할수록 더 보인다
이 말이 처음엔 모순처럼 느껴졌지만 살아보니 사실이었다
카페도 쇼핑도 약속도 줄이고 나니 내 안에 여백이 생겼고 그 여백에 삶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살면 재미없지 않나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요 오히려 이제야 진짜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