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이고 줄였지만 여전히 남아있던 것들
서울에서 미니멀하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나는 책상에 앉아 목록을 적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물건 의미 없는 약속 시간 낭비의 루틴 무심코 쓰는 돈
눈에 보이는 것부터 습관까지 ‘덜어내야 할 것들’은 예상보다 많았다
우선 물건을 줄였다 옷장은 계절에 맞는 옷 7벌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자주 입지 않는 옷 누군가 준 기념품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물건들
그동안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라는 이유로 붙잡고 있던 것들이었다
생활비도 통제했다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 카페는 두 번까지만
대신 집에서 밥을 해 먹고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나갔다
문제는 줄인다고 끝이 아니라는 거였다.
물건이 줄어도 마음속의 결핍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비워진 옷걸이를 보며 허전했고 주말에 친구와 약속이 없는 날엔 괜히 불안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로 나를 채워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완벽하게 비우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 일상이 나를 피곤하게 하지 않을 정도면
그 기준을 찾아가는 30일이 시작됐다
- 카페 쇼핑 약속을 줄이고 나서 만난 ‘나’라는 사람
처음으로 줄인 것은 ‘카페’였다
서울에서는 카페가 단순한 음료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일상이다
대화를 나누고 휴식을 취하고 잠시 도망치는 장소
하지만 그 익숙한 도피처에서 벗어나 보니 나는 나와 마주해야 했다
쇼핑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수많은 광고가 끊임없이 말한다
“지금 이걸 사야 더 멋질 수 있어요”
“이건 당신에게 꼭 필요해요”
하지만 내가 진짜 필요한 건 물건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이었다
쇼핑을 멈추고 나니 처음엔 허전했지만 점점 그 자리를 책과 산책이 채웠다
약속도 줄였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잡히던 저녁 약속을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이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 안에서 조용히 내 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나는 나라는 사람과 처음으로 제대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지금 뭘 느끼고 있지?”
“지금 이 삶 만족스러운가?”
그 질문들은 이전의 바쁜 일상에서는 들리지 않던 것들이었다
- 소비 없는 하루 시간을 새롭게 만나다
소비를 줄인다는 건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게 아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시간을 쓰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일이다
한 달 동안 나는 카드 내역을 거의 매일 기록했고
그 안에서 보이지 않던 감정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마음이 지칠 때 나는 습관적으로 카페에 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울 때는 아무 이유 없는 쇼핑을 했다
감정의 구멍을 소비로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소비 없는 하루는 처음엔 심심했지만, 곧 다르게 다가왔다
책을 한 권 다 읽는 기쁨 혼자 걷는 시간의 여유
정리된 방에서 향이 퍼질 때의 고요함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감각이 생겼다
어느 날은 이렇게 느꼈다
“이 하루, 내가 정말 살아 있었네”
그건 이전처럼 바쁘게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쇼핑을 해도 느끼지 못하던 종류의 충만함이었다
- 도시 한복판에서 발견한 '충분한 삶'의 온도
서울이라는 도시는 끊임없이 말한다
“더 벌어야 해”
“더 사야 해”
“더 바빠야 해”
그래야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그래야 외롭지 않다고
하지만 그 말에 그대로 휘둘리기엔 내 삶이 너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다
미니멀한 30일 실험은 완벽하지 않았다
때로는 유혹에 흔들렸고 지루해서 폰을 붙잡은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실험이 소중했던 건
내가 내 삶을 선택하는 감각을 다시 찾았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물건을 고를 때도 약속을 잡을 때도
이 질문을 먼저 한다
“이게 정말 나를 채워줄까?”
그리고 고개가 기울어지면 멈춘다
그 멈춤 안에는 불안이 아니라 평온함이 있다
서울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더 복잡한 곳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덜어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더 가져야’ 한다는 압박이 강할수록,
내 안에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30일 동안 미니멀하게 살아보며 가장 크게 느낀 건
“더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었다
그 확신은 단순한 절제나 고행이 아니라
내 삶을 더 명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에서 시작됐다
비우고 나니 보였다
버티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하루
버려야만 만날 수 있는 충만함
그리고 그 모든 여정은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